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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

by 키미캐비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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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

감염이 알츠하이머의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치료법에 대한 접근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2024년 여름, 여러 연구팀이 주목할 만한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았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파스칼 겔트제처(Pascal Geldsetzer) 연구팀은 영국과 호주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기존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면 전체 치매 환자 중 약 20%는 예방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이 백신은 약화된 생바이러스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형태였다.

또한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라는 제약회사와 영국 학자들이 실시한 신형 재조합 백신 연구에서는, 이 백신이 기존 백신보다 더 효과적으로 치매를 예방하는 듯한 결과도 나왔다.

 

기존 이론: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주류 연구는 오직 두 가지 단백질에 집중해 왔다. 아밀로이드(amyloid)와 타우(tau)라는 단백질이 뇌 속에서 쌓이며 플라크(덩어리)와 엉킴을 만들고, 이 때문에 신경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병이 진행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단백질이 병의 주원인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대상포진 백신 연구 결과는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대체 이론, 즉 바이러스가 병의 시작점일 수 있다는 주장을 다시 부각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 속의 단백질 플라크와 엉킴은 병의 결과물이 아니라, 감염에 대한 몸의 방어 반응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이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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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주장해온 루스 이츠하키 교수

이 이론을 가장 오래, 열정적으로 주장해온 사람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루스 이츠하키(Ruth Itzhaki) 교수다. 그녀는 현재 옥스퍼드 대학의 방문 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녀의 연구는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1형(HSV1)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HSV1은 보통 입술 주위에 물집(구순 포진)을 만드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의 약 70%가 감염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증상이 없다.

보통 이 바이러스는 뇌 바깥에서 비활성 상태로 있다가, 특정 조건에서 다시 활성화되면 구순포진을 일으킨다. 그런데 드물게 뇌 속에서도 활성화되며, 이때 염증이 생기는 부위가 알츠하이머에서 손상되는 뇌 부위와 정확히 겹친다.

2000년대 초, 이츠하키 교수는 실험실에서 인간 뇌세포에 HSV1을 감염시켰을 때, 세포 내 아밀로이드 단백질 수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바이러스가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중심의 이론에만 몰두해 왔고, 이츠하키 교수의 바이러스 이론은 외면당하거나 무시되었다. 특히 알츠하이머가 유전적 요인이 크고, 다운증후군 환자에게 거의 100% 발병하는 점은 바이러스 이론과 모순되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존 이론에 대한 불만과 회의가 커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아밀로이드와 타우를 줄이는 약을 개발했지만, 결과는 미미하거나 실패였다. 반면, 다른 뇌질환이 감염과 연결된 사례가 속속 등장하며, 바이러스 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에플스타인-바 바이러스와 다발성 경화증(MS)의 관련성이 밝혀진 바 있다.

 

Alzheimer’s Pathobiome Initiative (AlzPI)의 등장

이츠하키 교수의 이론을 검증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기업가 25명이 모여 AlzPI(알츠하이머 병원체 생태계 이니셔티브)라는 연구 조직을 결성했다. 이들은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원이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최근 AlzPI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뇌 속 단백질 축적을 유도하는지를 다룬 논문들을 주요 학술지에 잇따라 발표했다.

 

아밀로이드·타우는 사실 방어 기제?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이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은 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체를 막기 위한 초기 방어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단백질들은 끈적한 성질이 있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감싸서 전파를 막는다. 적당한 양의 단백질은 오히려 뇌를 보호하지만, HSV1 같은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과잉 반응을 유도해 단백질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뇌세포를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영향까지 설명 가능

이 이론은 기존의 비판도 반박한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아밀로이드 전구물질을 더 많이 생성하기 때문에, HSV1이 활성화되면 플라크가 훨씬 더 쉽게 쌓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APOE4라는 유전형을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높은데, 이츠하키 교수는 HSV1이 뇌에 있을 때만 이 유전자가 위험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1997년에 밝혀냈다. 2020년 프랑스 연구팀은, HSV1의 반복 활성화가 APOE4 보유자에서 알츠하이머 위험을 3배 이상 높인다는 것도 증명했다.

 

바이러스 활성화 요인은?

2022년, Tufts 대학교의 연구진은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휴면 중인 HSV1을 다시 깨운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이 대상포진 백신이 보호 효과를 보이는 이유일 수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외상성 뇌손상(외부 충격)도 HSV1을 깨워 아밀로이드 축적을 유도했다.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

기존 치료법은 아밀로이드를 줄여 병의 진행을 늦추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면,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병을 예방하거나, 이미 진행된 병도 멈출 수 있다. HSV1을 억제하는 항바이러스 약(예: 발라시클로버)은 이미 특허도 끝났고, 대상포진 백신도 고령층에게 널리 사용 중이다.

 

실제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일부 연구자들은 실제 의료기록을 분석해 항바이러스제와 치매 발병률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2018년 대만의 한 연구에 따르면, 구순 포진 환자가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치매 위험이 90% 감소했다. 다른 나라들의 후속 연구에서는 대체로 25~50% 수준의 예방 효과를 보고했다.

 

 

첫 임상시험 진행 중

현재 콜롬비아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HSV1 항바이러스제인 발라시클로버(valacyclovir)가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무작위 이중 맹검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2018~2024년 사이에 환자 120명을 모집해 절반은 약을, 나머지는 위약을 투여했다.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기존 이론의 중심 인물인 UCL의 존 하디(John Hardy) 박사조차 이 임상시험 결과가 긍정적이면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겔트제처 교수팀은 대상포진 백신을 활용한 별도의 임상시험도 추진 중이다.

 

전 세계 3,200만 명의 희망

현재 전 세계 약 3,200만 명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만약 바이러스를 타겟으로 한 치료법이 단 10%만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어도,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기사 "How viruses could trigger Alzheimer’s"의 전문을 쉽고 자세하게 풀어 쓴 한국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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